[人터뷰] 폴란드 바르샤바 남종석 (주)칸 대표, 월드옥타 부회장 “차세대 무역인들이여, 세상 누구와도 자신 있게 통하는 글로벌 매너를 장착하라”
“식민지 생활을 겪은 우리나라처럼 역사적으로 많은 애환을 가지고 있는 나라, 한때 중유럽의 강자였지만 강력한 이웃 나라들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고 나라의 이름조차 사라졌던 나라, 폴란드는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제2의 고향이자 사업을 하는 터전인 땅입니다.
무려 123년 동안의 식민지 생활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지켰을 만큼 애국심과 민족성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일구는 일이 탄탄대로는 아니었지만, 폴란드란 나라에 관해 공부하고 그 역사를 이해하면서 사업의 탄력이 붙기 시작했어요.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무역을 한다는 것, 상대 나라에 대해 깊고 충분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창업 10년 만에 연간 2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유럽의 한인 경제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남종석 대표는 폴란드에서 무역사업을 하고 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매너, 두터운 신용과 신뢰,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반을 다졌다.
2003년 현지에서 무역회사 ‘칸(Khan)’을 설립한 후 한국과 폴란드 간 경제 교류, 중소기업의 동유럽 시장 진출과 청년 해외취업 연계 지원 등 국가경제 발전 및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제44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월드옥타(OKTA, 세계한인무역협회) 협회에서 통상위원회 및 지사화사업 관할 부회장을 맡은 그는 한국-폴란드만이 아니라 이제 한국과 전 세계 무역인들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직물 수출을 위해 인생의 반을 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직물 무역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그가 앞으로 차세대 무역인들을 위해 일하려 한다. 월드옥타의 2021년 계획과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또 폴란드나 유럽 각지에 소개할 새로운 무역 아이템을 찾고자 고국에 방문한 남종석 대표를 만났다.
남종석 폴란드 바르샤바 (주)칸 대표/월드옥타 부회장
▲사진 : 무역경제신문
강인한 칭기즈칸의 정신으로 시작한 사업,
현지인과의 신뢰를 우선하다
Q. 폴란드에 정착해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남종석 대표는 ㈜선경(현 SK네트워크)에 입사하여 1997년 폴란드 지사장으로 파견되면서 폴란드로 바르샤바로 이주했다. 말이 지사장이지 1인 지사장이었고, 넉넉하지 않은 환경과 상황 속에서 주재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폴란드는 오랜 공산 체계로 벗어버리고 민주화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물자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고, 타국에서 입고 먹는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남 대표가 이끄는 폴란드 지사는 상당히 수익성이 좋기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한 일들이 현지에서 인정과 신뢰를 받고, 매출로 이어지면서 손에 꼽히는 지사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의 직장 생활과 개인사업으로의 독립에 대해 고민해오던 남 대표는 한 선배의 조언에 대기업 지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조직에서 승부를 보는 것도 좋고, 개인 사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다. 대기업은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는 과일이나 채소와 같다. 비옥한 땅에서 비료도 주고 상품 가치가 있도록 재배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온실 주인의 마음이 변해 재배 품목을 바꾸면 자기의 의지에 무관하게 뿌리채 날아가야하는 종속적인 인생이 된다.
하지만 사업은 민들레 홀씨와 같다. 혹독한 환경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 야생이지만 민들레 홀씨가 뿌리를 내리면 그건 곧 너의 것이 된다.”
핵심을 찌르는 선배의 조언에 남 대표는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어떤 삶을 살 건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고민하다가 ‘자유롭게 살아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동남아나 선진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면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일궈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단련이 됐던 터라 가족들도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Q. 유난히 그 나라의 역사, 세계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칸Khan] 이라는 회사 이름도 역사 속 인물에서 비롯된 것인가.
회사를 그만두고 2003년 현지에서 무역회사 ‘칸(Khan)’을 설립했다. ‘시작은 작지만 꿈을 크게 꿔라, 그리고 빠르게 움직여라’는 사업 신조를 바탕으로 시작한 회사 칸(Khan)은 역사적 인물이 배경이 된다.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기구한 상황 속에서 성장했지만, 알렉산더 대왕, 히틀러, 나폴레옹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가장 짧은 기간에 정복해 제국을 만든 대단한 인물이다.
칭기즈칸이 빠른 기동성과 글로벌 정책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국가를 건설한 것처럼 그 역시 스피드, 현지화, 네트워킹을 주요 전략으로 작은 나라 폴란드에서 시작했지만,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겠다는 포부로 이름을 지었다.
학창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1999~2000년 바르샤바 경제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을 때 칭기즈칸을 연구했다. 그의 성공 요인에 큰 감동을 하였고, 그 여운이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작용한 것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으므로,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역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쇼팽, 퀴리 부인, 코페르니쿠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등 폴란드 역사의 큰 영향을 준 인물부터 문화와 생활을 폭넓게 알아야 그 나라와 민족성을 알 수 있어요.
그런 이해와 인지가 없이 무역을 하는 것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격’입니다. 무역을 잘하고 싶다면 역사 공부는 필수입니다.”
Q. 폴란드에 주재원으로 가서 2003년 독립했을 때, 초기의 창업 정신을 회상한다면.
선배의 조언이 현실이 됐다. 칸을 시작하고 나서 대기업 후광 효과가 사라지니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따랐다. 다행히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은 거래 업체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표정을 싹 바꾸고 설움을 주는 업체도 있었다.
대기업 지사장의 자리에 있었을 때 소위 갑질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했고, 열과 성의를 다해서 일하는 모습을 몇 년간 지켜본 거래 업체들의 도움으로 그래도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남 대표는 어떤 자리에 있거나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성공 요인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성공 요인은 폴란드 현지인들과 무역을 하겠다는 기준을 세운 거예요. 당시 폴란드 직물 시장은 현지인과 인도상인 무역상들이 반반씩 점유하고 있었는데, 사업 초기 인도상인과 거래를 하면 큰 물량을 쉽게 오더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폴란드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곳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오더가 작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현지인들과 거래를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죠. 초장기에는 물량이 적었지만, 차근차근 올라가더니 변함없이 꾸준한 거래선을 유지하고 있어요. 지름길보다 멀더라도 본질에 가깝게, 아직도 그 철학에는 변함이 없답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 폴란드,
모든 일의 과정은 문서화해야 한다!
Q. 한국 사람들에게 폴란드라는 나라는 좀 생소한데, 폴란드에 대해서, 그 나라의 국민성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폴란드란 나라를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아요. 오랜 세월 독일이나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민족이죠.
강대국의 영토 분할로 무려 123년 동안 지도상에 이름이 사라진 적도 있었지만,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자국의 고유 언어인 ‘폴란드어’는 지켜온 훌륭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카톨릭 종교가 근간이기 때문에 나라의 구심점이 있고, 사회가 안정화되어 있어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태어나면서도 죽을 때까지 종교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사회가 어수선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하지만 남 대표는 폴란드와 비즈니스를 할 때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이야기를 전했다. 첫째로, 폴란드 사람들은 내일 100원보다 오늘 10원을 더 중요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계약이 이익이 아니라면 진행하지 않는 것. 무역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이해하거나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로는 모든 일은 문서로 챙기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45년 동안 사회주의 체제 속에 있던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문서로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이것으로 서로의 책임을 분명하게 가리기 때문에 문서 작업은 필수다.
만약 문서상 하자나 미비한 점이 있다면 나중에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이 증빙되어야 한다. 일을 구두로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꼭 이메일, 계약서, 메모 등 문서로 남겨야 한다.
셋째, 모든 일은 문서로 해서 일의 진행이 더딜 수 있다. 또 휴가도 길고, 급한 성격이 아니므로 오히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되 서류는 세세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Q. 폴란드도 한국 음식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가. 한류에 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봉제 산업이 탄탄한 폴란드에 ZARA, Mango 같은 서유럽의 SPA 브랜드들이 잠식하면서 내수 시장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하향세를 걷고 있다. 이런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직물 사업 위주로 하던 사업 포트폴리오에 외식업을 추가했다.
쇼핑몰 푸드코트에 식당 3곳을 인수해서 한식을 포함한 아시안 푸드를 판매하는 곳으로 운영 중이다.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에 많이 진출하면서 한국 음식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최고의 맛은 김치다.
“불고기, 비빔밥을 생각할 것 같은데 의외로 김치의 인기가 제일 높아요. 전채요리로 샐러드를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김치를 샐러드처럼 먹더라고요. 한국 사람들도 매워서 밥이나 반찬이랑 같이 먹는다고 설명을 해줘도, 애피타이저나 샐러드처럼 김치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음 코스를 먹어요.
폴란드한인연합회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폴란드 한인회에서 '코리안푸드 페스티벌'을 기획했어요.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돼 올해 하반기에 다시 계획 중인데, 바르샤바 주요 공원에서 폴란드 현지인들이 한국 음식과 음료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류 문화에 대한 노출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소비까지 연결되는 한류 붐은 미비하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다른 유럽 나라나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 한류 콘텐츠가 큰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좌)남종석 폴란드 바르샤바 (주)칸 대표/ 월드옥타 부회장과 이금룡 무역경제신문 발행인이
인터뷰 진행중이다. ▲사진 : 무역경제신문
우물안 개구리에서 넓은 세상으로 가라, 월드옥타가
차세대 무역인들을 위한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Q 현재 월드옥타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월드옥타의 2021년 비전을 말해달라.
월드옥타는 2017년부터 코트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함께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거점 역할을 대행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세계 68개국 143개 지회 옥타 회원들은 한국 기업들의 수출 도우미다.
`글로벌마케터`라 불리는 한상들은 현지 시장 진출과 바이어 연결, 계약 등 해외 지사 역할을 수행한다. 이곳에서 통상위원회 및 지사화사업 관할 부회장을 맡은 그의 어깨가 무겁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운영하는 지사화 사업은 진입-발전-성장 3단계로 구분하는데, 월드옥타는 초창기 진입 단계를 맡아 진행하였고, 현재는 진입을비롯한 발전-성장 단계도 수행하고있다"
정부에서 월드옥타의 다양한 국내외 활동과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무역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월드옥타는 정부 예산으로 100억이 운영될 정도로 공신력 있는 단체로 성장하고 있고, 또 성장해 나가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월드옥타에서 지사화 사업은 매년 더 늘리고 키우려고 하고 있어요.
월드옥타가 가진 큰 무기 중 하나인 ‘매칭 메이킹’을 통해 좋은 사업을 발굴하고, 국내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통상위원회는 14개 품목별로 같은 카테고리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정보를 교류해요.
이런 교류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남종석 대표는 월드옥타의 트레이드마크인 ‘차세대 무역스쿨’을 통한 후배 양성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통상위원회를 중심으로 월드옥타의 강력하고 탄탄한 네트워킹을 통해 해외 진출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정부 조직과 차별화돼서 민간단체나 중소기업과 협업을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다양한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월드옥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미 해외에 1천만이 넘는 인적 자원이 일하고 있고, 월드옥타가 국내에 있는 기업이나 청년들과의 교두보 역할을 잘해서 우리 민족이 세계시장에서 무역 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Q 한국은 그야말로 취업과의 전쟁이다. 월드옥타에서 지원하는 해외 취업 사업을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실제로 작년에 200명 이상 해외 취업, 올해 300명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에 있는 청년들을 월드옥타 각 나라 회원들의 회사에 매칭시켜 취업을 시키는 사업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땅에서나 경쟁력이 있으므로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무조건 선진국을 고집하지 말고, 오히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더 기회가 많다고 조언한다.
“국내 청년들이 해외 취업이 잘되려면 일단 어른 세대부터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1년간 폴란드에 가서 일하고 오겠다면 하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그 먼 나라까지 굳이 왜 가느냐, 더 넓고 잘 사는 나라도 있는데’라며 열이면 열 자식을 만류할 겁니다.
오히려 낯선 땅에서의 가능성을 보고 응원해주는 윗세대들의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폴란드 한상이 이 낯선 나라를 알리려고 글도 기고하고 활발하게 월드옥타 활동을 하는 거예요. 청년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Q. 차세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철학이나 당부가 있는가.
“저는 후배들에게 글로벌 매너와 품격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들이랑 눈이 마주치면 피해요. 먼저 상대방과 눈을 잘 맞추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글로벌한 매너가 필요합니다.
‘좌빵우물’ 같은 테이블 매너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만약 호스트라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골고루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지, 대화가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금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 매너입니다.
글로벌 매너가 장착된다면 빌 게이츠를 만나도 밤새 이야기할 할 수 있고, 친구가 되고,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한 매너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야기가 잘 통해야 마음을 나누고, 그래야 비즈니스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끊임없는 공부에서 비롯된다.
역사, 문화,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 외에 사업 테크닉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차세대 후배들인 이런 내공을 쌓을 수 있도록 월드옥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좌)이금룡 무역경제신문 발행인 (우) 남종석 폴란드 바르샤바 (주)칸 대표 겸 월드옥타 부회장이
인터뷰 종료후 기념촬영 진행중이다.
▲사진 : 무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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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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