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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920년 바르샤바 전투와 봉오동 전투

 

1920년 폴란드와 한국에서는 각각 나라의 독립을 위한 큰 전투가 있었다.

바르샤바 전투와 봉오동 전투이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영어 표기는 ‘WARSAW’이다. 수많은 전쟁과 약탈의 현장이기도 해, 누군가는 ‘WAR-SAW(전쟁을 보았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1611년 수도로 지정돼 중유럽 강자의 중심지로 잠시 화려한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1772년부터 시작된 주변 강국들의 분할로 인해 바르샤바는 러시아에 귀속된다.

 

폴란드는 마침내 1795년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의해 삼등분돼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만, 폴란드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에 접어든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 제13조에 고무된 폴란드는 1918년 11월, 123년 만에 드디어 독립국가가 된다.

 

1920년 바르샤바 전투와 피우수드스키 장군

그러나 이 신생국은 곧바로 새로운 위협에 직면한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러시아 공산당은 폴란드를 교두보로 유럽에 공산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1920년 폴란드를 전면 침공했다. 독립한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군대의 정비도 제대로 안된 신생 폴란드군은 초기에 맥없이 무너지고 전선이 여기저기 뚫리면서 러시아 붉은군대는 한 달여 만에 수도 바르샤바 목전까지 도달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폴란드 국가원수 유제프 피우수드스키(Jozef Pilsudski)장군은 대담한 반격전을 기획했다. 폴란드군을 두 진영으로 나눠 한 부대는 비스와강에서 사수하면서 다른 한 부대는 러시아군의 배후로 침투해 기습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작전계획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600㎞ 가까이 퇴각해 오며 폴란드 부대들은 지쳤고 절반 가까이 군화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보급도 엉망이었으며, 급조된 부대들은 훈련도 부족했다. 

그러나 러시아군 무전 주파수를 도청한 폴란드군의 배후 침투공격으로 전세는 일거에 역전됐다. 러시아군은 불과 2일 동안의 전투로 6만5,000명의 포로와 2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참패했고, 폴란드는 유럽을 공산화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폴란드가 유럽을 구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1683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무서운 기세로 유럽을 공격했을 때, 폴란드 왕 얀 소비에스키 3세(Jan III Sobieski)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과 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군을 지휘해 이슬람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유럽 가톨릭 세계를 보호했다.

2개의 영화, ‘1920년 바르샤바 전투’와 ‘봉오동 전투’

폴란드의 유명 영화감독 예르지 호프만(Jerzy Hoffman)은 17세기 이후로 폴란드가 외세의 도움 없이 싸워서 첫 승리한 바르샤바 전투를 배경으로 <1920년 바르샤바전투>라는 영화를 발표했고, 2011년 폴란드국립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Bronisław Komorowski) 당시 폴란드 대통령도 참석했다.  

 

영화 ‘1920년 바르샤바전투’와 ‘봉오동전투’ 포스터

 

바르샤바 전투가 있던 1920년, 6월 중국 길림성 봉오동골짜기에서는 대한독립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영화 <봉오동전투>(감독 원신연, 2019년 개봉, 480만명 관람)는 우리 독립군이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군과 싸워서 대승을 거둔 최초의 전투를 그린 영화이다.

1920년 봉오동 전투와 홍범도 장군

1919년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군은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군을 끊임없이 공격해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도 1920년 6월초에 두만강을 넘어 일본의 헌병순찰대를 공격했다.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면서 두만강을 넘어 삼둔자까지 들어와 그곳에 사는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독립군은 이때 침입한 일본군을 매복 공격해 커다란 타격을 입혔는데, 이를 ‘삼둔자 전투’라고 한다.

삼둔자 전투로 화가 난 일본군은 독립군을 공격해 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홍범도는 자신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뿐 아니라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 등과 함께 연합 부대를 만들었다.

이윽고 일본군이 두만강을 넘어 공격해 오자 독립군 부대는 봉오동 주민을 모두 대피시킨 뒤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좁은 골짜기에 갇힌 신세가 된 일본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사망자는 157명, 부상자는 200여명에 달했다.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사망하고 약간의 부상자가 생기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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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왼쪽)과 피우수드스키 장군
 

독립군은 홍범도의 봉오동전투를 통해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가 있었고, 4개월 뒤에 김좌진 장군이 주도한 청산리에서는 약 2,800명의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 약 5,000명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군은 이후에도 독립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독립군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홍범도는 부대를 이끌고 무기와 식량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러시아로 건너갔다. 

그러나 1921년에 러시아 공산당이 배신해 독립군의 무장을 해제시키면서 독립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독립군이 목숨을 잃는 자유시 참변(흑하 사변)이 일어났다. 이로써 홍범도는 더 이상 독립군을 지휘할 수 없게 됐고, 이후 소련의 강제 한인 이주 정책에 따라 1937년에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이주한 뒤 1943년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길

금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이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독립군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임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미래를 열어갈 힘을 주는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려고 하자, 북한은 평양이 고향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평양으로 송환하는 것이 조상 전래의 풍습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정부의 유해 봉환을 반대하고 있다.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던 홍범도 장군이 묻히고 싶었던 조국은 반목과 갈등으로 으르렁대는 분단된 조국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다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 운동가들을 추모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책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남종석 폴란드한인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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